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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몬 선미, 가수 된 이유, 소녀 가장 불우한 어린 가정환경, 신동 선미 오해했다

토크몬 선미, 처음으로 불우한 소녀 가장 어린 시절 밝혀

토크몬에 원더걸스 선미가 출연해 자신의 불우한 어린 시절 가정환경을 처음으로 밝혔다. 항상 밝고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원더걸스로 데뷔해 돈과 인기를 다 누렸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반전이었다. 가정환경이 불우한 학생들이 오히려 밖에서는 밝게 지내 오해를 받는 경우와 비슷하다. 하지만 인터넷에선 부유하게 자랐다는 글들이 올라오기도 한다.



연예인이 된 이유, 소녀 가장으로 병든 아빠와 동생 2명의 생계를 위해


"저는 사실 이 얘기를 안 하려고 했던 얘기들이거든요", 연예인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아빠라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폐결핵 합병증으로 와병을 하던 아빠와 2살 어린 남동생, 4살 어린 남동생과 엄마없이 살았다. 아버지는 산소호흡기 차고 집에 계시다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정형편은 어려워지고 장녀인 선미가 소녀가장으로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해결할까 고민했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들, 항상 밝고 성실한 선미 챙기면서 교사하라고 권유



교사 되려면 오래 걸려, 당장 먹고 살기 힘든데...

초등학교 5학년, 연예인 되기로 결심


학교 선생님들은 항상 밝고 공부도 잘하는 선미에게 가정형편이 어려우니 커서 선생님이 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교사가 되려면 10년 이상 너무 오래 걸리고 당장 먹고 살기 힘들고 동생이나 아버지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 때 연예인이 되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보아 보면서 오디션 보러 서울에



14살에 JYP 오디션 합격, 연습생 생활


자신도 보아처럼 어린 나이에 데뷔를 해서 돈을 벌고 싶어 버스타고 서울 올라가 오디션을 봤다. 14살에 JYP 오디션에 합격해 서울에 올라왔는데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 남동생이 아버지를 간병을 했다. 딸이 혼자여서 아버지한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습생 생활 중 아버지는 "아빠 너무 힘들다, 이제 갈 거 같다, 애들 잘 부탁한다" 등 문자를 보냈다. 힘든 연습생 생활에 답장은 했지만 자신도 힘들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죽음, "아빠 먼저 간다" 문자, 답장 못했는데 다음날 돌아가셔



유서 마지막에 "다음 생에도 내 딸로 태어나줘", 데뷔 3개월 전에 돌아가셔


또 투정이라고 생각해서 답장을 안했는데 불행히 다음날 돌아가셨다고 한다. 데뷔하기 3개월 전에 돌아가셔서 데뷔하는 것을 못봤다고 한다. 아버지가 남긴 유서에 선미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맨 마지막에 "선미야, 다음 생에도 내 딸로 태어나줘"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기획사와 삼촌 등이 병원비 지원해 줘


아버지의 병원비 등은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고 삼촌도 지원을 해줬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많아 도와줘서 힘든 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에야 꺼낸 이유


지금은 엄마와 남동생 2명과 같이 살고 있다. 그동안 가족들이 마음이 아플까봐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니까 얘기해도 될 것 같아 꺼냈다고 한다.


아버지는 기아 팬, 이종범 정말 좋아했다.


흔치 않은 성인 선씨로 선동열을 좋아했고 기아의 팬이라고 했다. 특히 이종범 선수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아빠랑 야구를 보던 행복한 기억이 생생하다. "아빠 보고 있지? 아빠가 좋아하던 이종범님이랑 같이 방송한다. 난 엄마와 동생들이랑 잘 지내고 있어. 이제는 아빠를 보내주려고 해, 너무 섭섭해 하지마. 끝까지 잘 할게" 



슈퍼주니어 신동, 선미 오해했다.


선미에게 조금 오해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같이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신동의 나이는 20살이었다. 너무 어려서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줬는데 나름 오빠여서 질문을 했는데 대답도 안하고 까칠했다고 한다. 지하철 맨 끝에 서 있던 선미를 기억이 나는데 매우 어두운 친구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데뷔 직후에도 밝지는 않았는데 이제서야 오해가 풀렸다고 한다.



선미 초등학교 교사, 초등학교 담임교사, 담임선생님, 은사 스승의 글


출처 https://m.cafe.naver.com/uvacenter/196878


가수 선미가 티브에서 가정사를 고백했네요. 그 애는 제게 아픈 손가락 제자였답니다. 4학년 때 만나 6학년때까지 가장 힘든 시기를 곁에서 지켜 보았습니다. 집에도 여러 번 갔었고 아버지와도 자주 만나고, 짧게 이야기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선미는 참 의젓했답니다. 


초등학교때가 지금보다 더예뻤지요. 아마 지금도 화장 안한 얼굴이 더 예쁠것 같아요. 선미는 제 얼굴 그대로입니다. 지금은 윤곽이 선명해 화장을 하니 너무 강해 보이는 느낌입니다. 공부도 잘했고 예의 바르고 A+였답니다.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그애의 품행을 보면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답니다.


선미 아버지는 선미가 딸이라는걸(가수가되기이전에도) 너무 자랑스러워 했구요. 시실 아버지가 제게 전화를 해 "세상을 하직하고 싶다, 선미를 딸로 맏아달라"라는 전화를 하기전에는 선미 생활이 노출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척추 결핵으로  전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어머니는 생활고를 못이겨 집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냥 귀티가 나는 아이여서 그런 상황인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집에 찾아 가려고 하니 친구들이 선미집을 아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선미는 그렇게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제가 돕고(선미가  밝히지  않은 부분이라  생략하겠습니다), 사회복지 도움을 받아 의식주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 이후 그 예쁘고 똑뚝한 아이는 인터넷 '이 달의 얼짱'인가에 응모하면서 오디션이라는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박진영씨 오디션 갔다 온 이야기도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의젓하게 성장했네요. 방송을 볼 때마다 제 귀는 쫑끗하고 눈을 번쩍이지요. 이제 어느만큼 성장했는지 과거 이야기도 하네요. 


정말 그애는 연예인보다는 교사가 어울리는 품성이었답니다. 그러나 본인 말대로 가장으로서 책임이 연예인이라는 길을 택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대견하기 짝이 없네요. 아마 선미도 제 이름은 잊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선미의 기억은 늘 보람으로 기억된답니다. 잠시 투병이야기가 아닌 것으로 시름을 달래보았습니다. 저는 이미 퇴직해 자연인 입니다.